좋은 순간은 늘 찰나였다.
행복은 단편적인 순간의 기억이었고,
그로 인한 기쁨이 유지된다고 해봐야 고작 며칠.
기쁨은 이내 시들해져버렸다.

그에 비해 아픔은 참 오래갔다.
고작 한 가지 아픔을 가지고
어느 해의 겨울은 내내 눈물로 보내야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남는 것은 온통 행복했던 기억 뿐이다.

행복했던 순간들은,
그 순간의 온도와 습도, 바람과 햇볕의 냄새,
웃고 있던 눈가의 미세한 떨림까지도 기억이 선명한데
아팠던 건 왜 그리 아팠는지조차 기억이 희미하다.

그 기억의 뿌리에 존재하던 마음이 모두 사라져버린 후,
아팠던 순간은 그저 기억으로 떠오를 뿐인데
좋았던 순간은 여전히 행복한 감정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사나보다.
순간에 충실하게 아파, 아픔은 그 자리에 다 놓고 떠나서
아껴두었던 행복을 다시 조금씩 꺼내보다보니
또 그리 아팠던 일을 반복하고 반복하며 살 수 있나보다.


아주아주 오래 걸리긴 했지만
다시는 가질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가질 수 있었다.

셈 하나 하지 않는 그 원초적이고 다듬어지지 않은 감정이
얼마나 맑았는지, 사랑스러웠는지, 행복했는지는 기억하고
얼마나 아팠는지 그 통증은 기억하지 않았던 탓.

길지는 않았지만 순간순간의 농도가 너무 짙어
참 길었던 기분이다.
얼마나 지나야 흐려질 수 있을런지 잘 모르겠다.

행복이라는 감정이 주는,
그 기억들이 주는 에너지로 살아왔다 했지만,
이 마음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그런 마음도 있었지. 하며 미소 지을 수 있는
과거의 어떤 기억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라질 거라면
기억도 없이 흔적도 없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그렇게 사라졌으면 좋겠다.

아픔 하나 잊기 싫을만큼 짙어져가는 마음이라
어떤 것도 기억하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다.
by Rui Austen
Rui.shu |  2017.11.20 23:09 | COMMENT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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