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

 

어느 날 거리에서 불행한 여자 옆을 지나다가 클로이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내가 저 여자처럼 얼굴에 커다란 점이 있었어도 나를 사랑했을 것 같아?" 그 질문에는 "그렇다"는 대답에 대한 갈망이 숨어 있다. 몸이라는 세속적인 표면,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비참하게도 어떻게 바꾸어볼 수 없는 표면보다 높은 곳에 사랑을 놓아달라는 요구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재치나 재능이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조건 없이 네가 너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눈 색깔이나 다리의 길이나 수표책의 두께 때문이 아니라 네 영혼의 깊은 곳의 너 자신 때문이다. 연인이 외적 자산을 벗어버린 나를 좋아하고, 무엇을 이루었느냐에 관계없이 우리 존재의 본질을 평가해주고, 흔히 부모와 자식 사이에 존재한다고 말하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되풀이해주기를 바라는 갈망이다. 진정한 자아는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다. 그 외에 우리의 이마에 점이 생긴다든가, 나이 때문에 몸이 시든다든가, 불황 때문에 파산을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우리의 표면에 불과한 것에 손상을 주는 사고들에 대해서는 책임을 면제해주어야 한다. 설사 우리가 아름답고 부유하다고 해도, 이런 것들 때문에 사랑받고 싶어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서 그것이 사라지면 사랑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이 내 얼굴보다는 머리를 칭찬해주기 바란다. 그러나 꼭 얼굴을 칭찬해야겠다면 , [정적이고 피부조직에 기초를 둔] 코보다는 [운동신경과 근육이 통제하는] 미소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해주기 바란다. 내 소망은 내가 모든 것을 잃고 "나"만 남았다고 해도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다. 이 신비한 "나"는 가장 약한, 가장 상처받기 쉬운 지점에 자리잡은 자아로 간주된다. 내가 너한테 약해 보여도 될 만큼 나를 사랑하니? 모두가 힘을 사랑한다. 하지만 너는 내 약한 것 때문에 나를 사랑하니? 이것이 진짜 시험이다. 너는 내가 잃어버릴 수도 있는 모든 것을 벗어버린 나를 사랑하는가? 내가 영원히 가지고 있을 것들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가?

 

 

 

# 18-1

 

왜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하는 질문은 왜 너는 나를 사랑하는가 하는 질문만큼이나 대책 없는 [또 훨씬 덜 즐거운] 질문이다. 두 경우 모두 우리는 연애의 구조에서 우리가 의식적인 통제를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부딪히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사랑은 우리가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이유들 때문에 받을 자격도 없는 우리에게 선물로서 주어졌다는 사실에 부딪히게 된다. 일단 그런 질문을 하게 되면 우리는 한편으로는 완전한 오만으로 기울거나, 다른 한편으로는 완전한 겸손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내가 무엇을 했기에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겸손한 연인은 자신이 무엇을 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묻는다. 내가 무엇을 했기에 사랑을 거부당하는가? 배반당한 연인은 그렇게 묻는다. 그러면서 오만하게도 절대 자신의 몫이 아닌 선물의 소유권을 주장한다. 사랑을 베풀 위치에 있는 사람은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하여 오직 한 가지 대답밖에 할 수가 없다. 네가 너이기 때문에. 이 답을 듣게 되면 질문을 했던 사람은 자만과 우울 사이에서 위험하게, 예측할 수 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

 

 

 

모든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향한 사랑을 갈망한다는 것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밖에 채워질 수 없게 만드셨다는 증거가 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그것을 연인 혹은 가족 그도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에게서 구하지만, 존재 자체를 향한 사랑을 온전히 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시기에 누구에게서도 백퍼 만족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용납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한들, 그것이 영원한지 장담할 수 없을 뿐더러 사실 그런 상대가 되기까지는 그렇게 될 만한 '이유'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자라면,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에 가족을 향해, 연인을 향해, 또 다른 누군가를 향해 그 사랑이 가능해진다. 연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사랑이 필요하고, 그 사랑을 위해 존재와 존재의 만남이 있어야 한다. 백날 부딪치고 싸우고 화해해봐야 여전히 그 자리, 혹은 더 나빠지지 않던가. 한 몸을 이루기 위해서, 진정한 연합을 위해서 지금 바로 필요한 것은 존재와 존재의 만남. 존재를 향한 사랑.

 

 

내가 무엇을 했기에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네가 너이기 때문에."

by Rui Austen
Records/Book |  2011. 3. 25. 00:06 | COMMENT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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